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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깨비

유보현 목사
2021-09-18
조회수 426

요양시설에 군수님이 배추모종을 나눠 주셨다

그 이름도 반가운 조선배추 모종.

뒤곁에도 조그만 밭을 만들고

백일홍 뽑은 자리에도 심고.

아침 저녁 물을 주고

빗방울이 굵은 날은 비닐로 덮어 주었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크는 것 이라던

옛 어른 말씀이 생각 나서

"참 귀한 모종을 주셨는데 잘 키워야지"

맘 먹었는데 

그 예쁜 잎새를 갉아 먹는 도둑이 생겼다.

목초액을 타서 뿌려도 조금씩 배추잎이 사라졌다.

며칠 전에 드디어 원장님이 도둑을 잡았다.

살이 통통한 방아깨비.

"네마리가 잎을 먹고 있는 것 잡아 땅에 묻어 버렸어요".

오늘은 내게 들켰다. 방아깨비 세 마리.

돌에 던졌더니 버둥거렸다.

"안 죽네"

배수구 맨홀 고인물에 집어 넣었다.

배추만 안먹으면 널 죽일 리 없었을텐데. . . .

잠자리에 드는데 미안해 진다, 방아깨비한테.

생매장이 나았을까, 익사가 나았을까.

아떻게 하는 게 덜 아팠을까?

그래도 할수 없다, 조선배추가 더 귀하다.

김치만 있으면 밥맛이 꿀맛이던 그 옛날 조선 배추.

방아깨비야 널 죽이고 싶지 않아. 다른 걸 먹어.

잘 자라라, 조선 배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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