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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의 계절

유보현 목사
2022-09-24
조회수 225

대추나무  세그루

큰 나무는 아니지만  태풍에 떨어질세라 단단히 가지를 붙잡고  매달려 

사나운 바람고비를 넘긴 대견한 대추.

지난 해. 아직 익지도 않은 대추를 몽땅 따서 

당신 방 바닥에 깔아 놓으셨던 휴양원 어르신.

올 봄 부터 정원에 나오시는 게 뜸해지셨다.

"구십 여섯이 되니, 나가는 것도 힘들어요"

얼마나 궁금하실까.

얼룩 덜룩 붉은 무늬로 익어가는 대추.

나무 아래 모자를 받치고  먼저 익은 열매를 조금 땄다.

해먹에 널어 놓고  큰 놈으로 몇개  골라 

거실로 들어 가니 화투를 치신다.

"어르신, 대추 몇개 따왔어요. 아직은 덜 익었는데 궁금하실것 같아서 . . "

"아이구, 작년보다 더 잘으네요, 작년엔 굵었는데"

" 올해는 잘고  많이 열지도 않았어요. 우선 맛보시고 더 많이 익으면 또 따다 드릴게요"

처음 밝은집에 오셨을 때는 화단 꽃가꾸기 꽃나무 물주기 . . .

행여 병 나실라 쉬시라 하여도  꽃, 나무 좋아 얼굴이  봄볕에 그을렸던  어르신.

성경도 부지런히 두번이나  쓰셔서 아드님 따님에게 선물하신 어르신.

육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 좋아 하시던 취미생활도  힘겨워  못하시고

대추 구경도 벅차시고 . . .

윗 정원, 아래정원, 가을장미도 빛이 곱고 구절초 단아한 꽃이 만발했는데

거실에  앉은채로 목소리만 쨍쨍 하시다.

해마다 

지팡이 없이 가족으로 오시는 휴양원 어르신 .

나날이 더 작아지셔서 요양원으로 이사하시는 어르신.

재회를 약속하며 떠나 보내드린 어르신.

한점 구름같은  인생, 

만나고 흩어지는 구름. 

나도 흰머리가 더 늘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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