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6. 유 보현 목사
오후 5시 30분. 영하 6도입니다. 원장님과 함께 양동면 계정리 송어횟집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맵고 차가운 한 겨울 저녁시간이지만,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먼 산 능선을 따라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옛집 싸릿대 울타리처럼 줄지어 늘어서있는
우둠지의 가지런함이 여늬때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26km, 35분이 걸려 도착. 우리가 아는 한, 가장 맛있는 송어회 포장을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요양원에 올라가니 오후 7시. 야근 준비를 하는 직원에게 ‘간식’이라며 건네었더니 직원들이 “당연히 할일 한 건데요, 뭘 이런 걸 사오세요 미안하게” 합니다.
묵묵히 어르신을 정성껏 섬기는 직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어제입니다.
3주일 전, 다리뼈가 골절되어 입원중이신 어르신 보호자님이 오후에 사무실로 방문하였습니다.
무사히 잘 모시려 해도 드물게 골절사고가 날 때가 있습니다.
골절의 위험이 있어 온돌방에 모시던 92세 여자 어르신으로 ‘주저앉았다”고 하시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무슨 소리를 들은 직원이나 같은 방 어르신도 없었습니다,
밝은집은 온돌방 매트방 침대방이 있어서 기립이 어려우신 어르신은 온돌을 사용하시고 휠체어를 이용하시고 누워 굴러 다니시면 요 옆에
어린이 놀이방 매트를 연결하여 안전하고 자유로우시도록 깔아 드립니다. 원하시는 분에게는 매트를 사용하시도록 하고 보행은 어려우나
팔과 손이 자유로우신 어르신은 도너츠 방석에 앉아 넓은 실내와 3m X62m 의 복도를 맘껏 다니시게도 합니다.오후 간식도 잘 드셨는데 그 후 고통을 호소하신
부위를 보니 뼈가 약간 튀어나와 있어서 즉시 인근에 사시는 아드님에게 연락하였고 부위를 살펴 본 아드님은 저녁식사를 다드시는 것을 보고 돌아갔으며,
당일은 일요일이므로 익일 시내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입원시켜드렸던 아드님과 처음 보는 사위분이 함께 내방한 것입니다.
골절 사고가 드문 밝은집이지만 사고가 나면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보험회사에서 처리를 합니다.
재작년에 어르신이 입원하신 적이 있었는데 밝은집에 가겠다고 침대에서 자꾸 일어나셔서 견디다 못한 보호자와 병원이 이른 퇴원을 허락하여서,
밝은집에서 수발을 받으시며 정해진 진료 날에 모시고 가는 통원치료를 하시면서 회복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양평시내 병원에 입원하시면 저와 원장님이 문병을 가고 보호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이 어르신은 보호자들이 양평병원에서 경희대 병원으로 당일 이송하였고 소식을 전해 받지 못해 소식을 기다리던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3주일 후, 보호자분이 오신 것입니다.
어르신 상태가 위급하여져서 뇨도관을 삽입하고 경구투여 식사를 하며 폐렴이 걸리고 골절 부위가 고름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사이 경희대 병원을 거쳐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며 의문이 있으니 당일 직원들이나 밝은집의 실수가 있었는지 CCTV를 봐야겠다고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요구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지고 온 진단서는 입원 10여일 이후 발행된 것이었으며 단순 골절로 가신 분이 여러 가지 복합질병 상태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위분은 보험회사를 수십년 째 다니고 계시답니다. 밝은집은 이제껏 보호자들이 CCTV 확인을 요구한 적이 없어 직원들이 기계에 대해 어설프게 하니까
사위분이 직접 이것저것 클릭하며 능숙하게 3주 전 사고당일을 찾아 새벽 컴컴한 때부터 돌리기 시작 했습니다. 예배가 10시 30분이니
어르신이 거실로 나오시는 시간은 그보다 조금 전 일 것이라고 하였으나 어르신과 상관없이 조그만 ‘의문의 단서’라도 찾으려는 듯,
초 단위 화면의 직원들 행동 하나하나를 새벽부터 면밀히 보았습니다.
직원들을 믿었으나 혹시 순간적이라도 소홀함이 있지는 않을까하여 저와 원장님의 눈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컴컴한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어르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르신이 점심을 다 드시고 방으로 들어가실 때의 화면은 아름다운 영화를 본 듯하여, 내마음속 깊은 곳에서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요양실에 가셔서는 누워계셨다고 합니다.
저도 원장님도 요양팀의 일하는 모습을 이렇게 낱낱이 본적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보신보호자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치료비가 많이 들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하였고 우리는 단순 골절 외에는 다른 건강이상이 없으셨는데
그 사이 위중하게 되셨다니 안타까워 했습니다.
저는 밤새 어르신들 곁을 지키는 직원들이 참으로 귀하게 생각되고 고마웠습니다.
아무도 보지않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하루 종일 성심껏 보살펴드리는 직원들의 모습을 cctv 에서 보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 . . 선언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송어회로 한턱 쏘겠다고. 3교대 근무를 하니 3팀에게 쏴야 합니다.
저녁에 숙소에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목사님" 내가 고맙지요. 사랑합니다.
밝은집 직원 여러분.
2018. 2. 6. 유 보현 목사
오후 5시 30분. 영하 6도입니다. 원장님과 함께 양동면 계정리 송어횟집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맵고 차가운 한 겨울 저녁시간이지만, 마음이 즐거워서인지 먼 산 능선을 따라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옛집 싸릿대 울타리처럼 줄지어 늘어서있는
우둠지의 가지런함이 여늬때보다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26km, 35분이 걸려 도착. 우리가 아는 한, 가장 맛있는 송어회 포장을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요양원에 올라가니 오후 7시. 야근 준비를 하는 직원에게 ‘간식’이라며 건네었더니 직원들이 “당연히 할일 한 건데요, 뭘 이런 걸 사오세요 미안하게” 합니다.
묵묵히 어르신을 정성껏 섬기는 직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어제입니다.
3주일 전, 다리뼈가 골절되어 입원중이신 어르신 보호자님이 오후에 사무실로 방문하였습니다.
무사히 잘 모시려 해도 드물게 골절사고가 날 때가 있습니다.
골절의 위험이 있어 온돌방에 모시던 92세 여자 어르신으로 ‘주저앉았다”고 하시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무슨 소리를 들은 직원이나 같은 방 어르신도 없었습니다,
밝은집은 온돌방 매트방 침대방이 있어서 기립이 어려우신 어르신은 온돌을 사용하시고 휠체어를 이용하시고 누워 굴러 다니시면 요 옆에
어린이 놀이방 매트를 연결하여 안전하고 자유로우시도록 깔아 드립니다. 원하시는 분에게는 매트를 사용하시도록 하고 보행은 어려우나
팔과 손이 자유로우신 어르신은 도너츠 방석에 앉아 넓은 실내와 3m X62m 의 복도를 맘껏 다니시게도 합니다.오후 간식도 잘 드셨는데 그 후 고통을 호소하신
부위를 보니 뼈가 약간 튀어나와 있어서 즉시 인근에 사시는 아드님에게 연락하였고 부위를 살펴 본 아드님은 저녁식사를 다드시는 것을 보고 돌아갔으며,
당일은 일요일이므로 익일 시내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입원시켜드렸던 아드님과 처음 보는 사위분이 함께 내방한 것입니다.
골절 사고가 드문 밝은집이지만 사고가 나면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보험회사에서 처리를 합니다.
재작년에 어르신이 입원하신 적이 있었는데 밝은집에 가겠다고 침대에서 자꾸 일어나셔서 견디다 못한 보호자와 병원이 이른 퇴원을 허락하여서,
밝은집에서 수발을 받으시며 정해진 진료 날에 모시고 가는 통원치료를 하시면서 회복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양평시내 병원에 입원하시면 저와 원장님이 문병을 가고 보호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이 어르신은 보호자들이 양평병원에서 경희대 병원으로 당일 이송하였고 소식을 전해 받지 못해 소식을 기다리던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3주일 후, 보호자분이 오신 것입니다.
어르신 상태가 위급하여져서 뇨도관을 삽입하고 경구투여 식사를 하며 폐렴이 걸리고 골절 부위가 고름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사이 경희대 병원을 거쳐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며 의문이 있으니 당일 직원들이나 밝은집의 실수가 있었는지 CCTV를 봐야겠다고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요구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지고 온 진단서는 입원 10여일 이후 발행된 것이었으며 단순 골절로 가신 분이 여러 가지 복합질병 상태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위분은 보험회사를 수십년 째 다니고 계시답니다. 밝은집은 이제껏 보호자들이 CCTV 확인을 요구한 적이 없어 직원들이 기계에 대해 어설프게 하니까
사위분이 직접 이것저것 클릭하며 능숙하게 3주 전 사고당일을 찾아 새벽 컴컴한 때부터 돌리기 시작 했습니다. 예배가 10시 30분이니
어르신이 거실로 나오시는 시간은 그보다 조금 전 일 것이라고 하였으나 어르신과 상관없이 조그만 ‘의문의 단서’라도 찾으려는 듯,
초 단위 화면의 직원들 행동 하나하나를 새벽부터 면밀히 보았습니다.
직원들을 믿었으나 혹시 순간적이라도 소홀함이 있지는 않을까하여 저와 원장님의 눈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컴컴한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정하고 부드럽게 어르신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어르신이 점심을 다 드시고 방으로 들어가실 때의 화면은 아름다운 영화를 본 듯하여, 내마음속 깊은 곳에서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요양실에 가셔서는 누워계셨다고 합니다.
저도 원장님도 요양팀의 일하는 모습을 이렇게 낱낱이 본적이 없었습니다. 끝까지 보신보호자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치료비가 많이 들어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하였고 우리는 단순 골절 외에는 다른 건강이상이 없으셨는데
그 사이 위중하게 되셨다니 안타까워 했습니다.
저는 밤새 어르신들 곁을 지키는 직원들이 참으로 귀하게 생각되고 고마웠습니다.
아무도 보지않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하루 종일 성심껏 보살펴드리는 직원들의 모습을 cctv 에서 보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 . . 선언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송어회로 한턱 쏘겠다고. 3교대 근무를 하니 3팀에게 쏴야 합니다.
저녁에 숙소에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목사님" 내가 고맙지요. 사랑합니다.
밝은집 직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