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활 일 기

어르신은 지금 어디 계셔요?

유보현 목사
2023-09-17
조회수 157

오늘, 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고 사무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휴양원에 계시다가 "돈 받을 게 있다. 2~3일 지나 오겠다"고 가신 어르신이 계십니다. 

가셔서 감 감 소식이더니, 우리들 없을 때, 직원도 잠시 외출했을 때, 다른 어르신들만 계실 때, 

모시고 갔던 따님이 와서 모든 물건을 가져 갔답니다.

그 때, 거실에 계시던 할머니들은 "딸이 모셔 가니까 . ."  두고 보기만 하셨다 지요. 자유니까요. 휴양원은.

오늘, 그 어르신의 둘째 사위라는 분이 전화를 한 것 입니다.

"계산이 남았느냐?  수의를 두고 와서 가지러 가겠다"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둘째 사위의 이어지는 얘기를 듣고 

"어르신 신원 인수 인계는, 모시고 왔던 주 보호자가 와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내야 할 비용이 남아 있는지는  서류 확인해 보고, 수의는 어디 있는지 찾아 보고 저녁에 전화드리겠습니다"고 대답하고 

물었습니다.
"여기가 어딘 줄 아세요? "

"거기 기도원요..기도원이라고 하던데? 기도원 아니예요?"

"아닙니다. 여긴  교회고 개인 자선 시설인데 어르신은 지금 어디 계셔요?"

어르신의 돈 2억을 받을 게 있다고 모셔 갔다는 데 은근히, 험한 세상,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안하게도.

"강원도에 계셔요" 

전화를 끊고 약간의 안심과 까칠한 배반 감이 들었습니다.

요양제도 전에는 무료개인자선시설로12년 모시다가, 요양제도 실시될 초기에는  29인 정원의 요양원이 되었습니다.

요양원을 신축하여 이사한 이 후에는, 집도 넓고 정원도 넓지만, 휴양원으로 전환하여, 가장 많이 모셨을 때가 7분이었습니다.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신 분들이, 소문 듣고 찾아 왔는데, 우선, 요양원보다 오히려 10만원이나 싸다는(?) 게 맘이 들거나

실버 홈에 적응 못하신 모친을, 가정같고 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안심되어 모시고 싶다는 말씀들을 하십니다.

직원 한 분 두고 1실 한 분 씩 모시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저와 원장님의 숙소가 바로 곁에 있으니 노부모님 모시기에 좀 더 안심이 되겠지요.

사실은 양평 분들을 위해 무의탁 할머니들의 가정으로 세워, 가장 노릇을 하며 살다가 요양법이 시행되고 요양원이 되고보니

지금  밝은집 요양원은 먼 남쪽 바다 통영, 사천에서도 알음 알음,부모님 맡겼던 자녀분들의 추천을 받고 오신 분도 계십니다.

자녀 중에 서울에 거주하는 분들이 있어 소개를 받고 입소하시게 된 것입니다. 요양원은 원하는 지역, 원하는 시설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휴양원은 요양원과 달리 아무도 어디서도 지원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개인 시설은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요양법이 실시되기 전, 휴양원 입소하신 할머니들은 당신 자녀 없이 사시다가, 또는 양자나, 전실 자녀와 사시다가  

 외롭고 늙고 병들고 슬픈 나날을 보내시는 어르신을 무료로 모셨습니다.(같은 입장이지만 효 를 다하시는 자녀도 많습니다)

노인요양법이 실행된 이후에는  보호자분들이 웬만하면 요양시설로 모시고, 

가정의 경제적 부담 능력에 따라 비용을 감액 받는 국가  혜택도 있으니, 휴양원 문을 잠시 닫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외국거주 자녀들이 요양원계신 노부모님 곁에 머물고 싶어 잠시 귀국했을 때, 편히, 가까이 매일 부모님을 뵙는 편의를 위해.

또는 남편 어르신이 먼저 요양원 입소하셔서  노부부가  생이별이 되는 것을 막고, 자녀들의 부모님 돌봄 편의를 위해 문을 열었으며, 

운영비의 확보를 위해 신원이 확실한 분들을  몇 분 더  모시고 사는데, 입소 어르신, 특히 보호자의 신원 확인이  필수입니다.

이 O선 어르신 둘째 사위분의 전화를 받고 원장님이  휴양원에 들어 가 수의를 찾아 보니,

수의는 없고, 모시고 간 후 제 2 일에 따님이 와서, 이불 빼놓고 다 가져 갔다고 하는, 직원과  어르신들의  말씀만 확인하였습니다.

왜 수의를 남겨 놨다고 할까요?  수의 찾으러 오겠다고, 한 번도 안 와 본 둘째 사위가, 왜 우리 밝은집 휴양원에 전화를 했을까요?

33년 이 생활에, 경험도 쌓이고, 눈치도 빨라진 저는,  처음 대면할 때, 어쩐지 마음이 열리지 않았고 찜찜 했었습니다.

처음 왔을 떄, 따님은 자기 남편이"신학공부 중입니다" "개척하려고 합니다" 라고 하면서, 당장 어르신이 갈 데 없다는 절박한 얘기를 하였었고 . .

저는 면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침묵했습니다. 신학이라 . . . 신학이라 . . .이런 류의 호소는 오히려 신뢰가 . . .

어르신이 처음 오셨을 때를 기억하면서 원장님에게 퉁으로 한 마디 했습니다.
"내가 처음 볼 때부터  이분은 마음이 열리지 않더라 구요. 마음 만으론 안돼요. 이런 일은 내공이 있어야 안 속아요"

미안한 원장님이 "이젠 주민증도 복사하고 가족 관계증명서도 반드시 받고 확실하면 모실께요"합니다.

20년 전 쯤 일까? 찾아 보아도 아무도 올 사람 하나 없어, 우리 가족끼리, 돌아 가신 할머니 장례를 모시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우리 황 선생님이 집을 지키고 저는 강의 차, 외출했을 때였는데 조카라는 분이 찾아 와 남의 노인네를 맘대로 장례 지냈으니 배상하라는

막말로 괴롭힌 경우도 있었습니다.  산 속 조용한 우리집 가족들이, 저도 없으니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좋은 뜻으로 하는 일에도, 모셔 들일 땐, 찾아도 없던 가족들이 뒤늦게 나타나 우리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신원 확인이 필수입니다. 휴양원은 정부가 보장하는 요양원과 다릅니다. 어르신, 특히 보호자의 신원.

어디 사는지, 무슨 이름인지, 정말 자녀인지  둘째 사위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데

없는 수의를 왜 찾으러 온다고 할까요? 그 비싼 "베로 만들어 둔 수의'를.

정원에 나오셔서 보행카를 밀며, 매일 운동하시던 어르신, 해먹에 올라 가시다가 뒹굴었다시던 어르신, 자두 열매를 세시던 어르신.

이O선 어르신은 정말 잘 계신거죠?

93세 어머니 곁, 휴양원에서 지내면서 매일 올라가 어머니를 뵙고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 외국거주 강O영 어르신 따님은

열흘 정도 묵다가 오늘, 오후 예배까지 참석하고 출국한다고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자유입니다. 1일 25,000원. 1실 사용. 식사제공. 무제한 면회. 두 따님까지 모여 3일을 지내다가 혼자 더 모친 곁에 남았던 외국 거주 따님.

"11월에 또 올 거예요"

"언제든 오세요. 환영이예요. 이제 식구 같아요"

저와 원장님과 직원과 어르신 모두 헤어짐이 섭섭했습니다.

문득, 이O선 어르신의 자녀와 강O영 어르신의 자녀가 비교 되었습니다.

이 O선 어르신. 잘 계시죠? 수의는 없는데, 수의가 필요해진 건 아니시지요?

따님이 가셔서 조금은 쓸쓸하실 강O영 어르신을 위로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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