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뵙습니다"
얼마 전, , 신학대학원에서 나의 졸업 논문을 지도하셨던 교수님이 밝은집요양원에 입소 하셨습니다.
문장의 작은 부분도 꼼꼼히 살피셨던 교수님이, 이제는 93세 고령 할아버지가 되셔서 휠체어에 앉으신 채 오셨는데,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며칠 후, 원장 전도사님이 "어느 땐 목사님을 아시는 것도 같아요" 했습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 건지, 저를 편안하게 하시려고 모르는 체 하시는 건지.
원장님과 함께 교수님 방에 들어 가서 원장님이 "목사님! 유보현 목사님 아셔요?"하며 저를 가리켰습니다.
교수님은 저에게 "마스크를 벗어 보세요"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시는데, 기억이 나시는지, 뭔가 생각이 날듯, 말듯, 명확하지 않으신지 조용히 웃으시기만 하셨습니다.
방에서 나오면서 원장님이
"아시는 것 같은데, 그냥 모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 하세요?"
"낯선 사람을 보시는 것 같지 않아요. 표정이. 아마 목사님을 편하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건지도 몰라요".
요양원을 운영하면 가끔 동네 이장님, 이웃 어르신, 함께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고령이 되어 입소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 뵌지 30년이 넘어 수발이 필요한 노인의 모습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반가움에 "오랫만에 뵙습니다", "저 유보현 전도사(목사)예요, 알아 보시겠어요?" 인사를 하면
대개는 알아 보시고 반가워 하시며 편안해지십니다.
못 알아 보시면, 저는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지난 일들을 간간히 꺼내어 대화를 합니다.
기억력이 조금씩 좋아지시면서 표정이 달라지시고 명료하지는 않으시지만 옛 기억의 창고에서 한 두 단어라도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는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우리 요양원은 위급하실 때, 병원으로 이송되어 소천하시는 어르신들보다 밝은집 특별요양실에서 소천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르신의 뜻과 가족들의 동의가 있으면, 임종이 가까운 위중한 어르신을, 밝은집에서 임종 시 까지 가족이 되어 돌보아 드립니다.
어르신 가족들과 그동안 보살펴 드린 밝은집 직원들이 침상에 둘러 서서 곁을 지켜 드리며, 천국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귓가에 대고 기도해 드리고 성경도 읽어 드리면서, 밝은집의 소신대로 "사람들이 둘러 지키면서" 보내드립니다.
아마도, 저를 목사로 키워 주신 교수님도 그 때가 이르면,
제자인 저의 기도 속에 잠드시고 천국에서 눈을 뜨시겠지요?
교수님이 입소하신 후, 주일 예배 설교를 할 때는 , 신학교수님이 앞에 계시니, 더구나 헬라어, 히브리어 단어를 읽을 때, 더 조심스럽지만
침대에 앉아 성경을 읽으시거나 문을 열고 들어 가도 모르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뵈면,
어른이 계신 가정처럼 든든한 생각이 듭니다.
밝은집 호산나교회 담임 목사인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실테니까요.
방 한켠에, 환한 꽃다발 하나, 걸어드리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얼마 전, , 신학대학원에서 나의 졸업 논문을 지도하셨던 교수님이 밝은집요양원에 입소 하셨습니다.
문장의 작은 부분도 꼼꼼히 살피셨던 교수님이, 이제는 93세 고령 할아버지가 되셔서 휠체어에 앉으신 채 오셨는데,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며칠 후, 원장 전도사님이 "어느 땐 목사님을 아시는 것도 같아요" 했습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 건지, 저를 편안하게 하시려고 모르는 체 하시는 건지.
원장님과 함께 교수님 방에 들어 가서 원장님이 "목사님! 유보현 목사님 아셔요?"하며 저를 가리켰습니다.
교수님은 저에게 "마스크를 벗어 보세요"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시는데, 기억이 나시는지, 뭔가 생각이 날듯, 말듯, 명확하지 않으신지 조용히 웃으시기만 하셨습니다.
방에서 나오면서 원장님이
"아시는 것 같은데, 그냥 모르시는 것처럼 하시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 하세요?"
"낯선 사람을 보시는 것 같지 않아요. 표정이. 아마 목사님을 편하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건지도 몰라요".
요양원을 운영하면 가끔 동네 이장님, 이웃 어르신, 함께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고령이 되어 입소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못 뵌지 30년이 넘어 수발이 필요한 노인의 모습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반가움에 "오랫만에 뵙습니다", "저 유보현 전도사(목사)예요, 알아 보시겠어요?" 인사를 하면
대개는 알아 보시고 반가워 하시며 편안해지십니다.
못 알아 보시면, 저는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지난 일들을 간간히 꺼내어 대화를 합니다.
기억력이 조금씩 좋아지시면서 표정이 달라지시고 명료하지는 않으시지만 옛 기억의 창고에서 한 두 단어라도 말씀하시는데
그럴 때는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우리 요양원은 위급하실 때, 병원으로 이송되어 소천하시는 어르신들보다 밝은집 특별요양실에서 소천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르신의 뜻과 가족들의 동의가 있으면, 임종이 가까운 위중한 어르신을, 밝은집에서 임종 시 까지 가족이 되어 돌보아 드립니다.
어르신 가족들과 그동안 보살펴 드린 밝은집 직원들이 침상에 둘러 서서 곁을 지켜 드리며, 천국에서 만나기를 소망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귓가에 대고 기도해 드리고 성경도 읽어 드리면서, 밝은집의 소신대로 "사람들이 둘러 지키면서" 보내드립니다.
아마도, 저를 목사로 키워 주신 교수님도 그 때가 이르면,
제자인 저의 기도 속에 잠드시고 천국에서 눈을 뜨시겠지요?
교수님이 입소하신 후, 주일 예배 설교를 할 때는 , 신학교수님이 앞에 계시니, 더구나 헬라어, 히브리어 단어를 읽을 때, 더 조심스럽지만
침대에 앉아 성경을 읽으시거나 문을 열고 들어 가도 모르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뵈면,
어른이 계신 가정처럼 든든한 생각이 듭니다.
밝은집 호산나교회 담임 목사인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실테니까요.
방 한켠에, 환한 꽃다발 하나, 걸어드리고 조용히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