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산꽃 이름도 예쁜 꽃 이름 모를 꽃이 가득한 오월은 계절의 여왕입니다.
산에 들에 바다에 맛있는 먹거리를 가득 허락하셔서 각종 별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시는
하나님은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향기도 다른 각종 꽃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시니
입과 눈과 귀가 모두 더없이 행복한 오월입니다.
쌀 알갱이만한 꽃 가운데 좁쌀보다 작은 꽃술이 모여 있는 속을 드려다 볼 때는
커다란 볼록 렌즈를 이용해야 합니다.
렌즈로 보는 그 작고 작은 세계의 오묘함이란!
비밀을 나눈 연인처럼 잠시 일체가 된 듯 즐겁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이른 잠자리에 들었던 부지런한 새들이 합창을 하여 우리를 깨웁니다.
봄 일이 많은 새들은, 좋은 집터를 골라 집을 만들고 멋진 짝을 찾아 선을 보고 정성을 다해
아기를 키우기 위해 길어진 봄날이 짧다고 온 종일 일을 할 것입니다.
꾀꼬리도 황금빛을 뽐내며 날아다니고
박새도 물까치도 자주 들러주는 친구입니다.
오늘은 창문에 노랑 할미새가 한참동안 앉아서 놀다 갔습니다.
노랑할미새는 가슴과 배가 샛노랑 빛입니다. 조류도감에서 이름을 알기 전,
나는 노랑할미새를 ‘노란앞치마’라고 불렀습니다.
화사한 노란 앞치마를 두른 얌전하면서도 일 잘하는 몸이 잰 새댁의 모습 같았습니다.
장대위에 매달은 새집에서 해마다 아기를 키워내고 땅콩을 부셔서 놓아주면 맛있게 내려와 먹습니다.
내가 노란앞치마라고 부르니 온 가족이 덩달아 노란앞치마라고 부릅니다. 밝은집은 할머니들의 가정이니
‘할미새’라고 부르기도 뭣해서 그냥 노란앞치마로 부릅니다.
익히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 할머니들께서도 잘 부르십니다.
대문 옆 경사지를 다듬어 정리하고 개나리 진달래 사이에 연산홍을 심었는데 어린 벚나무와 진달래 나뭇가지에
이제는 폐가로 남아있는 작은 새집을 발견하였습니다.
간장종지만한 작은 집에서 아기를 키워 낸 엄마 새는 얼마나 작을까,
아기 새는 또 얼마나 작을까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신접살림 차릴 장소를 물색하러 찾아온 엄마 새를 보았습니다.
크기가 내 엄지만 하고 귀밑에 까만 줄이 옆으로 그려있는 고운 갈색의 새입니다.
나는 ‘콩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호적 이름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통하는 세 번째 작명입니다.
작명가(?)로서의 첫 작품은 ‘별꽃’입니다.
키도 작고 잎도 잘고 밝은 흰빛의 별 모양의 아주 쬐끄만 꽃.
이름을 지어 부르다보니 정말 그 이름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밝은집에도 별명이 생긴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별명이 있고 불리는 사람은 기분 나쁘고
다른 사람들은 고약한 사람이 되는 별명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쩌렁 쩌렁하신 ‘장군 할머니’.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트롯트 메들리 가수 ‘카수 할머니’
풍신 좋으시고 속마음도 널널하신 ‘양반 할머니’.
날마다 책상을 펴고 성경을 써내려 가시는 “선비 할머니”
그런가하면 깽깽이 할머니, 깡패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 울보 할머니도 계십니다.
좋은 별명은 우리들이 붙여 드리지만 대개는 함께 생활하시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불려지기 시작해서 본명보다 더 많이 불려지기도 합니다.
문득, 나를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뭐라고 불러 주실까?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부르시는 것보다
“베드로야” 부르시는 것을 기뻐하였겠지요.
예수님께서 내게도 그런 별명을 지어주시면 좋으련만 나의 부족한 믿음을 먼저보시고
하는 냥을 아시는 주님이시니 한갓 바램일 뿐이지요.
별명은 자신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주는 듣기 싫은 이름이 있으면 한번 쯤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눈은 나를 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상처를 주고 기분 나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
특히 재미로 하거나 여러 사람이 누군가를 조롱하며 불러대는 행위는 삼가하고 피해야 합니다.
나도 싫은 일을 남에게 하는 일은 성도가 할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름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근하고 편안한 이름으로 부르고 들으면 좋겠습니다.
‘노랑 앞치마’와 ‘콩새’와 ‘별꽃’이, 내가 지은 별명을 좋아 할까요?
좋아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마태복음 7장 12절 )
2010-06-21
들꽃 산꽃 이름도 예쁜 꽃 이름 모를 꽃이 가득한 오월은 계절의 여왕입니다.
산에 들에 바다에 맛있는 먹거리를 가득 허락하셔서 각종 별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시는
하나님은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향기도 다른 각종 꽃으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시니
입과 눈과 귀가 모두 더없이 행복한 오월입니다.
쌀 알갱이만한 꽃 가운데 좁쌀보다 작은 꽃술이 모여 있는 속을 드려다 볼 때는
커다란 볼록 렌즈를 이용해야 합니다.
렌즈로 보는 그 작고 작은 세계의 오묘함이란!
비밀을 나눈 연인처럼 잠시 일체가 된 듯 즐겁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이른 잠자리에 들었던 부지런한 새들이 합창을 하여 우리를 깨웁니다.
봄 일이 많은 새들은, 좋은 집터를 골라 집을 만들고 멋진 짝을 찾아 선을 보고 정성을 다해
아기를 키우기 위해 길어진 봄날이 짧다고 온 종일 일을 할 것입니다.
꾀꼬리도 황금빛을 뽐내며 날아다니고
박새도 물까치도 자주 들러주는 친구입니다.
오늘은 창문에 노랑 할미새가 한참동안 앉아서 놀다 갔습니다.
노랑할미새는 가슴과 배가 샛노랑 빛입니다. 조류도감에서 이름을 알기 전,
나는 노랑할미새를 ‘노란앞치마’라고 불렀습니다.
화사한 노란 앞치마를 두른 얌전하면서도 일 잘하는 몸이 잰 새댁의 모습 같았습니다.
장대위에 매달은 새집에서 해마다 아기를 키워내고 땅콩을 부셔서 놓아주면 맛있게 내려와 먹습니다.
내가 노란앞치마라고 부르니 온 가족이 덩달아 노란앞치마라고 부릅니다. 밝은집은 할머니들의 가정이니
‘할미새’라고 부르기도 뭣해서 그냥 노란앞치마로 부릅니다.
익히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라 할머니들께서도 잘 부르십니다.
대문 옆 경사지를 다듬어 정리하고 개나리 진달래 사이에 연산홍을 심었는데 어린 벚나무와 진달래 나뭇가지에
이제는 폐가로 남아있는 작은 새집을 발견하였습니다.
간장종지만한 작은 집에서 아기를 키워 낸 엄마 새는 얼마나 작을까,
아기 새는 또 얼마나 작을까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신접살림 차릴 장소를 물색하러 찾아온 엄마 새를 보았습니다.
크기가 내 엄지만 하고 귀밑에 까만 줄이 옆으로 그려있는 고운 갈색의 새입니다.
나는 ‘콩새’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호적 이름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통하는 세 번째 작명입니다.
작명가(?)로서의 첫 작품은 ‘별꽃’입니다.
키도 작고 잎도 잘고 밝은 흰빛의 별 모양의 아주 쬐끄만 꽃.
이름을 지어 부르다보니 정말 그 이름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밝은집에도 별명이 생긴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별명이 있고 불리는 사람은 기분 나쁘고
다른 사람들은 고약한 사람이 되는 별명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쩌렁 쩌렁하신 ‘장군 할머니’.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트롯트 메들리 가수 ‘카수 할머니’
풍신 좋으시고 속마음도 널널하신 ‘양반 할머니’.
날마다 책상을 펴고 성경을 써내려 가시는 “선비 할머니”
그런가하면 깽깽이 할머니, 깡패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 울보 할머니도 계십니다.
좋은 별명은 우리들이 붙여 드리지만 대개는 함께 생활하시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불려지기 시작해서 본명보다 더 많이 불려지기도 합니다.
문득, 나를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뭐라고 불러 주실까?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부르시는 것보다
“베드로야” 부르시는 것을 기뻐하였겠지요.
예수님께서 내게도 그런 별명을 지어주시면 좋으련만 나의 부족한 믿음을 먼저보시고
하는 냥을 아시는 주님이시니 한갓 바램일 뿐이지요.
별명은 자신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주는 듣기 싫은 이름이 있으면 한번 쯤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눈은 나를 보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에게 상처를 주고 기분 나쁜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
특히 재미로 하거나 여러 사람이 누군가를 조롱하며 불러대는 행위는 삼가하고 피해야 합니다.
나도 싫은 일을 남에게 하는 일은 성도가 할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름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친근하고 편안한 이름으로 부르고 들으면 좋겠습니다.
‘노랑 앞치마’와 ‘콩새’와 ‘별꽃’이, 내가 지은 별명을 좋아 할까요?
좋아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마태복음 7장 12절 )
201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