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V,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참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닷물 온도가 1도 오르면 일어나는 일들도 무서웠고
1 초 마다, 2차대전을 종식시킨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에너지 5배의 에너지가 지구 대기에 퍼진다는 얘기도 놀라웠고
되새김질을 하는 소가 뀌는 방귀와 트림이, 큰 기후 변화를 주는 가공할(?) 요인이라는데
이일은 어찌 막을 수있을까 부지런히 걸어가다 불현듯 나타난 막다른 골목처럼 막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던 호주의 화재, 그 큰 나라를 온통 집어 삼키는 듯한 불길은 화면만 보아도 공포스러웠습니다.
첨단 과학과 영리한 지혜와 빛난 창의력으로 도도하던 지구인에게 무력함을 절감하게 한 무서운 불길은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꺼졌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홍수. 인간이 쌓아 올린 것들을 허물고 영구 동토는 녹아 내려 수백년 수 천년 얼음 속에 갇혀있던 바이러스 들이
살아 나 아직 약도 만들지 못한 동물과 인류를 침범한답니다.
알맞은 기후환경에 번성한 메뚜기떼가 가뭄과 홍수에서 겨우 건져 낸 농작물을 하루 15Km~20Km에 걸쳐 초토화 시켰답니다.
노아의 대홍수가 생각 나고 애굽의 메뚜기 재앙이 생각났습니다.
날마다 들리는 지진 소식은 땅이 갈라져 땅에 삼키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을 따르던 자 250명이 불에 타 죽고 14,700명이 염병에 죽었습니다.
또 흔하게 쓰다 쉽게 버리는 미세 프라스틱이 천지 사방 없는 곳이 없답니다.
물에 사는 생선을 먹어도 ,프라스틱 용기에서도, 종이 컵에서도 우리가 입는 옷에도 미세 프라스틱이 들어 있고
우리들의 몸, 심지어는 혈관 속에 들어가 온 몸을 순환 한답니다.
과학발전 . . . 편하고 깨끗한 환경 . . . 이제는 흔하게 먹는 쇠고기 . . . 아름다운 옷... 참 좋은 세상이, 참 편안한 세상이
가져다 준 변화인데, 목사님들의 설교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조시대에, 목사님들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오히려 초대교회의 복음사역으로 회귀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시대의 징조가 보이거든 "준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도 하지말고, 박사도 하지 말고, 책도 많이 쓰지 말고, 건축도 너무 화려하게 크게 짓지 말고
단순히, 주인이 맡겨 주신 양들을 잘 먹이고, 양육하는 일을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목양이 아닐까요?
신학자들은 저를 "종말론자"라고, 요양원 노인목회하는, 고급스럽지 않은 고리타분한 할머니목사라 겁이 많다고 웃을까요?
전에 신학대에서 잠간 강의할 때에, 틈 날때마다, 예수님을, 성경을, 그대로 전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이크이니, 영역해석에 공들여 너무 양념버무리지 말고, 너무 멋있게 , 너무 유식하게, 잘 하려고, 인기 있으려고 하지말고
그냥 말씀 그대로 쉽게 뜨거운 마음으로 전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적으로 믿고 전하는게 마이크의 도리라고 했었습니다.
그 때 공감해 주었던 그 학생들은 지금, 아마도 교단 중직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 그들은 어떤 마이크가 되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 말세의 징조가 보이는 이 때에.
전염병, 지진, 물욕, 기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천체와 궁창이 그 맑은 빛을 더 더 잃어 가면 . . .
톱에 켜인 이사야 처럼, 감옥에 갇힌 예례미아 처럼, 목사는 내 안의.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단순하게 예수님을 전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주일, 강대상 에 서면. 뉴스에서 들은 얘기를 하며 "때를 분별하자"고 한마디 합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 재림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오늘 기후문제 경고 TV 를 보며 다시 기억합니다.. 밤이 깊도록.
이 시대, 목사는 어떤 일을, 어떤 말을, 목숨 다해 외쳐야 주인께서 흡족해 하실까요?
내가 신비주의일까요? 근본주의 신학파 일까요? 괜스리 은헤시대에 기쁜 소식이 아닌 우울한 소리를 내는 은혜없는 목회자일까요?
세상 죄악의 범람을 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악한 사람들을 보며, 자연의 파괴를 보며
돈과 물리적 힘이 숭배되고 저마다 타인의 생각, 뜻을, 들을 마음보다, 자기 할 말이 많은 시대를 봅니다.
성경은 재림이 기까울수록 빈 부 격차와 권력의 사회적 소자에 대한 위압이 심화된다고 하시며
주의 종, 말씀의 나팔수들은 시대에 눈 감고 입 닫는 벙어리 나팔수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신 말씀을 찾아 읽습니다
예수 재림을 선포하며 회개와 구원의 참 복음을 외치는 나팔수보다 세속 축복을 성공이라 부르는 평안한 나팔수가 되지 맙시다.
기독인의 "성공"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압시다. 기독인의 성공은 저 건너 썩지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는 천부의 상속자 임을 압시다.
인생 석양에 , 그립던 고향마을 어귀에 접어 든 귀향자 처럼 잰 걸음으로 아버지 기다리시는 본가로 달려 가렵니다.
오늘 TV,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참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닷물 온도가 1도 오르면 일어나는 일들도 무서웠고
1 초 마다, 2차대전을 종식시킨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에너지 5배의 에너지가 지구 대기에 퍼진다는 얘기도 놀라웠고
되새김질을 하는 소가 뀌는 방귀와 트림이, 큰 기후 변화를 주는 가공할(?) 요인이라는데
이일은 어찌 막을 수있을까 부지런히 걸어가다 불현듯 나타난 막다른 골목처럼 막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던 호주의 화재, 그 큰 나라를 온통 집어 삼키는 듯한 불길은 화면만 보아도 공포스러웠습니다.
첨단 과학과 영리한 지혜와 빛난 창의력으로 도도하던 지구인에게 무력함을 절감하게 한 무서운 불길은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꺼졌답니다.
그리고 이어진 홍수. 인간이 쌓아 올린 것들을 허물고 영구 동토는 녹아 내려 수백년 수 천년 얼음 속에 갇혀있던 바이러스 들이
살아 나 아직 약도 만들지 못한 동물과 인류를 침범한답니다.
알맞은 기후환경에 번성한 메뚜기떼가 가뭄과 홍수에서 겨우 건져 낸 농작물을 하루 15Km~20Km에 걸쳐 초토화 시켰답니다.
노아의 대홍수가 생각 나고 애굽의 메뚜기 재앙이 생각났습니다.
날마다 들리는 지진 소식은 땅이 갈라져 땅에 삼키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을 따르던 자 250명이 불에 타 죽고 14,700명이 염병에 죽었습니다.
또 흔하게 쓰다 쉽게 버리는 미세 프라스틱이 천지 사방 없는 곳이 없답니다.
물에 사는 생선을 먹어도 ,프라스틱 용기에서도, 종이 컵에서도 우리가 입는 옷에도 미세 프라스틱이 들어 있고
우리들의 몸, 심지어는 혈관 속에 들어가 온 몸을 순환 한답니다.
과학발전 . . . 편하고 깨끗한 환경 . . . 이제는 흔하게 먹는 쇠고기 . . . 아름다운 옷... 참 좋은 세상이, 참 편안한 세상이
가져다 준 변화인데, 목사님들의 설교도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오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조시대에, 목사님들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 오히려 초대교회의 복음사역으로 회귀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대는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시대의 징조가 보이거든 "준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도 하지말고, 박사도 하지 말고, 책도 많이 쓰지 말고, 건축도 너무 화려하게 크게 짓지 말고
단순히, 주인이 맡겨 주신 양들을 잘 먹이고, 양육하는 일을 절실한 마음으로 해야 목양이 아닐까요?
신학자들은 저를 "종말론자"라고, 요양원 노인목회하는, 고급스럽지 않은 고리타분한 할머니목사라 겁이 많다고 웃을까요?
전에 신학대에서 잠간 강의할 때에, 틈 날때마다, 예수님을, 성경을, 그대로 전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이크이니, 영역해석에 공들여 너무 양념버무리지 말고, 너무 멋있게 , 너무 유식하게, 잘 하려고, 인기 있으려고 하지말고
그냥 말씀 그대로 쉽게 뜨거운 마음으로 전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적으로 믿고 전하는게 마이크의 도리라고 했었습니다.
그 때 공감해 주었던 그 학생들은 지금, 아마도 교단 중직에 있지 않을까요?
지금 그들은 어떤 마이크가 되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 말세의 징조가 보이는 이 때에.
전염병, 지진, 물욕, 기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천체와 궁창이 그 맑은 빛을 더 더 잃어 가면 . . .
톱에 켜인 이사야 처럼, 감옥에 갇힌 예례미아 처럼, 목사는 내 안의.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말고 단순하게 예수님을 전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주일, 강대상 에 서면. 뉴스에서 들은 얘기를 하며 "때를 분별하자"고 한마디 합니다.
"편안하다" "편안하다" 할 때 재림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오늘 기후문제 경고 TV 를 보며 다시 기억합니다.. 밤이 깊도록.
이 시대, 목사는 어떤 일을, 어떤 말을, 목숨 다해 외쳐야 주인께서 흡족해 하실까요?
내가 신비주의일까요? 근본주의 신학파 일까요? 괜스리 은헤시대에 기쁜 소식이 아닌 우울한 소리를 내는 은혜없는 목회자일까요?
세상 죄악의 범람을 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악한 사람들을 보며, 자연의 파괴를 보며
돈과 물리적 힘이 숭배되고 저마다 타인의 생각, 뜻을, 들을 마음보다, 자기 할 말이 많은 시대를 봅니다.
성경은 재림이 기까울수록 빈 부 격차와 권력의 사회적 소자에 대한 위압이 심화된다고 하시며
주의 종, 말씀의 나팔수들은 시대에 눈 감고 입 닫는 벙어리 나팔수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신 말씀을 찾아 읽습니다
예수 재림을 선포하며 회개와 구원의 참 복음을 외치는 나팔수보다 세속 축복을 성공이라 부르는 평안한 나팔수가 되지 맙시다.
기독인의 "성공"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압시다. 기독인의 성공은 저 건너 썩지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는 천부의 상속자 임을 압시다.
인생 석양에 , 그립던 고향마을 어귀에 접어 든 귀향자 처럼 잰 걸음으로 아버지 기다리시는 본가로 달려 가렵니다.